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사랑

by 알맹이 2022. 12. 21.
반응형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줄거리 간단 요약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습니다. 엘로이즈 모르게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비밀스럽게 그녀를 관찰하며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의 기류에 휩싸이게 됩니다. 

절제의 미학 - 첫째, 음향 효과

이 영화에서 배경음악이 나오는 장면은 딱 세 장면뿐입니다. 배경음악, BGM이 영상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큽니다. 어떤 음악을 까느냐에 따라 영상의 장르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배경음악을 삭제했다는 것은 정말 과감한 선택입니다. 이 영화는 배경음악을 대신해 주인공 엘로이즈가 살고있는 외딴섬의 해변을 가득 채우는 파도 소리, 엘로이즈가 묵고 있는 주택에서 난방을 위해 떼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 화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종이 위를 분주히 움직이는 붓 소리로 채워집니다. 이러한 일상적이고 백색소음 같은 소리 덕분에 관객은 영화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으며 세 번뿐인 영화의 BGM의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배경음악이 깔린 장면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런 저런 대화 주제를 물색하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을 들려주는 장면, 마을 축제에서 한 데 모인 여인들이 합창을 하는 장면, 두 여인이 헤어진 후 다시 만나게 된 공연장에서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의 여름 3악장까지 총 세 번입니다. 세 장면 모두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증폭되는 장면이어서 임팩트가 굉장해집니다. 특히 마지막 BGM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는 그 웅장함이 엘로이즈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기폭제라도 된 듯하여 영화의 마지막에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절제의 미학 - 둘째, 등장인물

이 영화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그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인 점도 이 영화의 특이점입니다. 주요 스토리를 끌고 가는 인물은 오직 두 명,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뿐입니다. 1770년, 여성의 입지가 현재보다 훨씬 적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 속에 남성은 전무합니다. 마리안느가 그려야 하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받아야 할 약혼자도, 하녀 소피에게 아이를 임신시킨 남자도, 저명한 화가였던 마리안느의 아버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롯이 서로 열렬히 사랑에 빠지게 되는 두 여인 엘로이즈와 마리안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하녀 소피의 모습만을 담습니다. 시대상과는 무관하게 어떠한 남성의 개입도 허용하지 않은 채 극이 진행됩니다. 

절제의 미학 - 셋째, 서사

영화 속 전개에 남성들을 철저히 배제시킴으로써 불필요한 서사를 과감하게 빼냈습니다. 먼저 엘로이즈의 언니가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엘로이즈와 결혼을 하게 된 남성의 이야기, 엘로이즈의 언니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약혼자와의 사이는 어땠는지, 약혼자와 엘로이즈 집안 사람들은 언니의 죽음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등의 이야기는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사랑을 설명할 때 없어도 될 군더더기입니다.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방문했던 첫 번째 초상화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녀 '소피'와 엘로이즈의 어머니의 입을 통해 전개에 방해받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화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성 화가로서 마리안느가 겪었을 고충 또한 엘로이즈에게 여성 화가의 한계에 대해 털어놓는 장면과 엔딩에 그녀가 자신의 필명 대신 아버지의 이름을 이용해 그림을 출품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됩니다. 이 영화에서 집중하고 싶은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다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중심 서사 이외에 불필요한 잔가지는 깔끔하게 정리함으로써 영화는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그들의 사랑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페미니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여성 감독인 셀린 시아마 감독이 두 여성 중심의 서사를 여성의 섬세한 시각으로 아름답게 풀어낸 페미니즘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제72회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으로, 돋보이는 절제의 미학뿐만 아니라, 영상미가 굉장히 뛰어난 영화이므로 한 번쯤 시간을 내어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점점 커지는 음악과 함께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되면서 분명 엄청난 울림과 여운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