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촬영기법, 미술 그리고 사운드에 대한 분석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흑백 화면에 70 년대 멕시코의 로마라는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중산층 가정의 가정부 클레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좌- 우 패닝 장면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러한 촬영 기법은 공간을 천천히 보여주며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인물들과 배경을 소개해 주고 인물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이 영화의 미술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한 번에 공간을 보여주기보다는 패닝으로 서서히 보여주어서 그에 따라 눈길이 가기 때문에 배경을 더욱 세심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니 세트가 아닌 실제 로마에 있는 한 집에서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보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감독이 택한 방식으로 보입니다. 영화의 내용 자체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실제 그의 가정부였던 리보를 떠올려 쓰게 되었다고 하니 그에게 있어서 영화의 현실성은 무척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사운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일상의 소리들이 매우 다양하고 입체적이어서 섬세하게 느껴졌고 영화에 집중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거리의 소리들을 비롯한 전반적인 사운드가 이것이 재현해낸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들의 삶을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했습니다.
<로마>의 전개 방식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저 한 가족과 가정부의 일상들이 나열되고 그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는 전혀 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덤덤하게 그들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시대적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70 년대 멕시코의 불안정한 정치, 사회적인 면모들이 그들의 모습과 함께 어우러져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저 상호 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클레오와 가족들의 삶을 보다 보면 당시 격동의 정치적, 사회적 시대 상황들을 자연히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클레오와 할머니가 가구 판매점에 갔을 때 하나의 트래킹 숏 안에 시위 현장과 이들의 모습이 함께 담기는데 개인과 사회가 일체 되며 카메라는 그 두 가지 요소를 한데 담아내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데 성공합니다.
쿠아론 감독의 애정이 담긴 영화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직접 촬영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의 깔끔하고 복잡하지 않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간결한 촬영 방식이 이야기를 더 잘 살려낸 것 같습니다. 기존의 그와 함께 작업해오던 엠마누엘 루베스키 촬영감독의 유려하며 화려한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적어도 <로마> 이 작품에서는 쿠아론 감독의 보다 간결한 촬영 방식이 이야기의 정서와 맞아떨어지며 영화 전반의 정적인 분위기를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정서적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클레오와 아이들, 클레오와 엄마 소피아, 클레오와 다른 가정부 아델라 등 인물들 간의 관계, 그들 사이의 유대감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페페와 클레오가 옥상에서 죽은 척하는 장면이 정말 좋았는데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고 쌓여온, 또 쌓여가는 그들의 유대감이, 순진하고 투명한 어린아이와 클레오의 관계가 보기 좋았고 거기에 함께 담긴 햇살조차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따사롭게 느껴지는 힘이 있었습니다. 감독의 기억을 재현 해냄에 있어서 그의 애틋함이 묻어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실제 기억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연출한 장면이라고 해도 정서와 관계를 드러냄에 있어서 중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가 남긴 짙은 여운
후반부에 롱테이크 트레킹 숏으로 찍힌, 아이를 살리려 수영도 못하는데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드는 클레오의 모습은 저에게 무언가의 큰 울림을 준 장면이었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흐름처럼 그들의 반복되고 일상적인 삶 또한 잔잔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나, 그들의 삶에는 거센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그 거대한 바닷속으로, 거센 파도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남자에게 버림받고 혼자 남겨져도 꿋꿋하게 살아오던 그녀가 결국 아이를 잃고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은 상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삶에 맞서는 그녀의 용기를 보여준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아이들과 클레오, 소피아 모두가 모여 감싸 안은 장면은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가까이, 가까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이 작품이 갖는 의의
연출적인 면으로는 첫 숏과 마지막 숏의 대비도 빼놓을 수 없는데, 첫 숏에서는 주차장 바닥의 타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으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고인 물에 비치게 하여 하늘의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하고 마지막 숏에는 계단을 올라가는 클레오의 모습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찍으며 그 모습이 하늘로 연결되며 실제 하늘이 프레임 속으로 들어오며 마무리됩니다. 천국을 연상케 하거나 카메라가 마치 클레오를 우러러보게끔 기능하여 여성을 공경하는 마음을 담은 감독의 일관된 태도가 잘 드러났고 그녀를 향한 애틋함과 애정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장르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은 서정적인 작품들을 선호하는데 이 작품은 이에 기초하였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시대적 상황까지 함께 담아내어 가정 내 불화부터 사회적인 억압까지 보여주어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클레오라는 캐릭터를 통해 당시 멕시코의 계층 구조도 알 수 있었고 한 사람의 삶인 동시에 그 시대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데 의의가 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별거 없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유년 시절의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러나 한없이 아름다운 기억이고 그걸 시각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풀어 내었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한 영화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지원하고 공개한 첫 작품으로 손색없는, 수상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대형 플랫폼이라고 해서 작품성이 없는, 공장처럼 대량으로 찍어내듯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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