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간략한 소개
이 영화는 <더 랍스터>, <킬링 디어>등을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연출작입니다.
절대 권력을 지닌 히스테릭한 영국의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권력의 실세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와 신분 상승을 노리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욕망 하녀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이 여왕 앤의 총애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버둥 치는 내용을 담은 작품입니다.
영화의 감상 포인트와 캐릭터 분석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그려진 세 여성의 권력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는데 미장센과 카메라 워킹, 사운드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빽빽하게 채워진 고풍스러운 미장센과 의상들을 보는 재미만으로도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연극처럼 장이 구분되어 총 8 장으로 구성한 점도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인물들의 대사들이 그 장의 제목이었던 듯합니다. 여왕 앤과 레이디 말버러의 관계는 사랑에 기초합니다. 그러나 무력하고 의지가 없는 여왕을 대신해 사라는 국정을 도맡고 권력의 실세로 자리매김해 있었습니다. 이에 도전하는 인물로 철저하게 살아남기 위해 권력에 아부하고 여왕에게 거짓으로 아첨하는 애비게일이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앤 여왕의 무릎 밑에 꿇어서 다리를 주무르는 애비게일의 모습에서 토끼로 오버랩되는 씬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며 최종적으로 그 주제를 드러내주는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동급이고 권력의 최하층인 동물과 다를 바 없으며 절대 주체로서 역할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한마디로 권력의 덧없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권력을 손에 넣었음을 알고 앤에게 소중한 존재인 토끼(죽은 자식들을 대체)를 발로 짓밟으며 자신의 권력적 성취와 승리를 실감하는 애비게일의 모습에서 이전에 앤의 고통을 이해하던 모든 모습들이 그저 권력을 향한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장면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앤의 다리를 주무르는 애비게일과 그런 그녀의 머리를 짓누르는 앤의 모습인데 결국 애비게일이 얻어낸 권력 또한 철저히 앤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것이며 그들이 완벽한 수직관계임을 보여줍니다. 이 모습을 카메라는 앤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찍으며 둘의 계급적 지위 차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기본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카메라 앵글이 수직적인 위압감을 상당히 잘 드러내는데 카메라 워킹이 이를 극대화합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몇몇 장면들에서 대체 어떻게 찍은 것일까 매우 궁금할 정도로 패닝이 기계같이 정확하게 떨어졌습니다. 이에 더 부자연스러웠던 것 같고 이질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또 애비게일이 휠체어에 탄 앤을 밀며 궁전을 돌아다니는 장면 등은 어안렌즈를 사용해 촬영했다고 하는데 공간을 일정 부분 왜곡되게 보여주며 공간이 주는 크기의 압도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화려한 미장센과 그 빽빽하고 촘촘한 구성은 영화의 완벽한 배경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배경처럼 존재하는 인간들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부감 숏과 광각렌즈로 배경과 동화된 인물들을 함께 담아내며 인물들 또한 왕궁의 소품과 같이 보이게 됩니다. 거대한 배경에서 한낱 미물에 불과한 초라한 인간 개개인을 잘 보여줍니다.
캐릭터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볼거리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자잘한 사건들과 주된 사건들이 연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계속해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캐릭터들이 굉장히 입체적이어서 그들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 또한 있습니다. 여왕 앤을 예시로 들면 그녀는 초반부터 쭉 무력하고 정신적인 고통에 빠져 정치는 나 몰라라 한 채로 사랑에 집착하며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입니다. 사라가 자신을 조종한다는 느낌을 줄곧 받아오다가 사라가 사라졌을 때 처음으로 국가의 중대사에 관여하여 결정을 내리게 되고 종국에는 권력에 맛이 들려 사라를 내치고 거짓된 애비게일을 택하게 됩니다. 사라의 경우 극 초반에 여왕인 앤에게 “오소리 같다.”라며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표현을 하는 모습에서 그녀와 앤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알 수 있으며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토끼를 봐달라는 앤의 요구에 “사랑에 한계가 있다.”라며 단칼에 거절하고 “애국심에는 한계가 없다.”라는 사라의 대사를 통해 애국심이 강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애비게일은 앤에게 머릿결이 좋고 아름다우시며 사랑스럽다는 등의 거짓된 달콤한 아첨을 일삼고 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점점 그녀와 가까워집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른 사람을 통해 앤의 귀에 들어가게끔 해 결국엔 얻어내는 애비게일의 모습을 통해 눈치가 빠르고 잘 간파하며 사람을 정말 잘 다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 하녀임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고 눈치껏 할 말을 하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가는 캐릭터입니다. 사라가 앤에게 주의를 주었던 것처럼 애비게일은 뱀 같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후반부에 궁을 떠나기 전 벽을 사이에 두고 사라와 앤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사라는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을 말할 수 없고 거짓이 없는 것, 그게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사라와 애비게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진실함과 거짓됨입니다. 그러나 앤의 결핍과 상실은 결코 진실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아픔이었고 사라는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반면 애비게일은 그 결핍과 상실을 어르고 달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끌어갈 줄 아는 여성이기도 합니다. 이런 능력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마샬을 휘두르고 조종할 때 잘 발휘되기도 합니다. 할리에게 조롱 당하거나 앤의 부름에 응하며 기는 것은 사라를 앞서기 위한 계략으로 허리를 굽힌 것이지 결코 자신을 낮춘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분 상승을 향한 욕망에서 비롯된 철저히 꾸며낸 행동들인 것입니다.
사라와 애비게일의 권력 다툼
앤, 즉 권력을 두고 다투는 애비게일과 사라의 모습을 통해 서스펜스는 증가합니다. 오리 사격을 할 때 애비게일이 주제를 넘는 발언을 하자마자 사라는 빈 총을 그녀에게 쏘며 경고합니다. 하지만 이후에 사격을 할 땐 애비게일이 오리를 맞추자 그 피가 사라의 얼굴에 튀게 됩니다. 이 둘의 사격 장면도 인물의 관계와 위치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초반에 사격에 서툴러 맞추지 못하던 애비게일이 점점 실력이 늘어 사라 못지않게 혹은 사라를 능가하게 됩니다. 애비게일이 사격을 잘하게 된 시점 (사라 얼굴에 피를 튀긴 때)이 그녀가 왕실에서도 권력을 쥐게 되는 시점과 일치하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 권력, 신분 상승에 대한 세 여자의 욕망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그에서 비롯되는 질투도 굉장히 첨예하게 보입니다.
철저하게 여성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남성들의 역할
철저하게 여성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지고 남성은 배제하였는데 남성들은 여성들의 적으로 기능합니다. 앤에게 있어 남성들은 사탕발림으로 비위를 맞추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자들이고 사라는 극중 남자들과 정치적 견해가 충돌하여 대립하는 인물로 설정이 되어있습니다. 또 애비게일의 경우는 남자를 본인의 신분 상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여기며 가문의 몰락으로 인해 자신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뜨린 아버지를 비롯한 남성들에게 적대심을 품고 있습니다. 할리도 초반에는 본인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애비게일을 겁박하고 조롱하지만 결국엔 그녀의 필요나 요구에 의해 움직이는 도구적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라에게 있어서는 고돌핀 총리가 그 역할을 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샬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일차원적인 남성 캐릭터로 그려진 것입니다.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한낱 하녀였던 애비게일에게 끌려다니고 휘둘리는 모습과 숲속 장면에서 나타났듯 늑대에 비유되어 그저 본능에 충실한 남자로만 그려졌다는 게 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애비게일은 자신의 삶이 꼭 미로 같다고 말하는데 벗어난 줄 알았는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그녀가 결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진흙탕 같은 수렁에 빠져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자신이 발로 누르던 토끼가 바로 그녀 자신인 것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욕망과 질투 등 인간의 보편적인 측면을 감독만의 독특하고 촘촘한 연출을 통해 잘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불친절한 상징과 은유가 많지 않아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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