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개 방식과 종교적 관련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속이고 착취해야 함을 아주 잘 드러내고 우리 사회의 씁쓸한 문제점을 신화적 사건을 모티프로 우화적으로 표현해 어딘가 몽환적이고 꿈속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반과 후반, 라짜로가 죽기 전과 부활한 이후 두 파트로 나뉘어 전개된다는 점인데 전반부는 목가적인 풍경의 고립된 시골마을 인비올라타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후반부는 도심 속 인물들을 보여주어 우리에게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듭니다. 저는 무교이기에 종교와 성경에 관해 무지하 기에 이 영화가 종교적인 레퍼런스로 가득한 작품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너무나도 순수하고 이타적인 라짜로의 일관된 모습과 부활, 음악이 성당을 떠나 라짜로 무리를 따라오는 장면 등에서 라짜로가 신적인 존재임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소작농들에게 노동 착취를 당하면서도 내내 불평불만 하나 없이 묵묵히 해내는 라짜로의 태도와 그 순진무구한 눈빛이 현실성과는 너무 괴리가 있어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한없이 순수하고 답답할 정도로 착할까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후에 늑대가 등장하면서 라짜로가 부활하고 도심으로 가게 되며 2 부가 시작될 때 비로소 그가 예수 비슷한 신적인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라짜로는 성경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라자로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라짜로'라는 존재의 상징성
후반부에서 보이는 라짜로의 모습은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마치 신생아와 같이 순수한 존재가 세상 구경을 나선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끔찍한 현실 세계에서도 라짜로는 침착함과 평온함을 잃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시간이 흘러 늙었지만 홀로 늙지 않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라짜로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이 악마, 괴물 따위의 취급을 하는데도 그는 따뜻한 마음과 태도를 내내 유지합니다. 세상도 변했고 그에 따라 마을 사람들도 외면이든 내면이든 모두 변했지만 유일하게 내면도 외면도 그대로인 라짜로가 상징하고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라짜로는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 영화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영화의 결말 부분의 은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신성한 인물이 추악한 현실 앞에서 처참히 무너지고 짓밟힙니다. 선함과 이타심이 중시되지만 정작 이를 다 갖춘 자는 짓밟히며 폭력을 당합니다. 이로써 <행복한 라짜로>는 현 사회를 더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합니다. 탄크레디 역을 맡은 배우 루카 키코바니의 인터뷰를 재밌게 봤는데, 그가 얘기하길 이 영화는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고 합니다.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진정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고 우리는 끊임없이 일하며 돈을 벌고 물건을 사는데, 행복은 새로운 전자제품이나 새 물건에서 얻어지지 않으며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 아닌 인간이라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사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는다 한들 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또 라짜로와 같이 선한 사람들이 짓밟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자본주의 사회라면 아무리 부를 추구하여 손에 쥔다고 해도 절대 행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이며 순간의 달콤함일 뿐인 것입니다. 현 사회의 문제를 꼬집는 이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영화
이 영화에서 홍수 이후 고립되어 외부와 연락이 끊긴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에서 무보수로 노동하고 마을의 지주 후작부인에게 착취 당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1980 년 이탈리아에서 실제 있었던 ‘집단농장 노예 사건’을 다룬 것인데 이런 비극적인 일은 실상 우리 자신과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일어나고 있는, 혹은 일어날 일인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영화라는 매체로 다룬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깨닫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영화 <기생충>을 예시로 들자면 계층 간의 갈등과 빈부격차라는 전 세계적인 사회문제를 훌륭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화제가 되고 이야깃거리로 이어지며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복한 라짜로>는 비록 신화적인 플롯이 가미되어 우화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분명하게 남는 여운이 있습니다.
<행복한 라짜로> 비하인드
이 영화의 감독인 알리체 로르와커가 여성 감독이라는 데서 한번 놀랐고 제71 회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제72 회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황금 종려상을 안겨준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로르와커 감독은 자신만의 색채를 잘 살려 연출하는 것 같습니다. 잔혹 동화를 따뜻하게 표현해 내어 그 효과를 더 배가 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초록 나뭇잎들 사이에 라짜로의 모습이나 롱 샷으로 아주 멀리서 대자연 속 인물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16mm 필름으로 촬영해 특유의 감성이 더 잘 살아난 것 같습니다. 탄크레디 배우 인터뷰를 보면 더 구할 수 없는 필름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작업을 했기에 실수가 없어야 했고 매일이 공포였다고 합니다. 이런 한계를 가지고도 완성시켰다는 게 참 대단합니다. 휴머니즘을 말하는 영화이기에 올드 스타일의 작업 방식을 고수했다고 하는데 잘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행복한 라짜로> 감상평
제가 생각하기에 이 작품은 ‘역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성당에서 내쫓기고 성당의 음악이 라짜로를 따라 그 무리들을 따라다니는 장면에선 정작 종교가 진정으로 신의 가호가 필요한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음을 역설합니다. 또 영화의 제목 ‘행복한’ 라짜로도 영화를 다 본 사람이라면 그가 행복하지 못함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 행복할 수 없음을 역설하고 그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더욱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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